2008년 8월 31일 일요일

승리보다 소중한 것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글은 "해변의 카프카" 밖에 읽어본 적이 없다. 끝까지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종일 빠져 있다가 나온 느낌이었다. 머리 속이 안개로 둘어싸인 느낌. 촉촉하지만 어딘가 찝찝한 느낌이었다. 논리로 전혀 이해되지 않아 답답했다. (난 아저씨니까?) 작품해설을 읽고 서야 조금 '아' 할 수 있는 정도.

그런데 서점에서 '또 자기개발 서적인가' 하고 집어든 책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이 있었다. 몇 페이지 읽어보니 올림픽과 호주여행을 겸한 에세이다. 이 아저씨에게서 실세계의 이야기가 나온다니, 오히려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여하튼 프롤로그가 재미있어서 바로 구입. 이틀만에 다 읽었다. 이렇게 빨리 한 권을 읽는 건 오랜만. 상쾌함을 느꼈다.

이야기의 주축은 올림픽. 그 중에서도 마라톤이다. 그렇지만 양념으로 들어간 호주 여행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호주의 특이한 동물들 ㅡ 오리너구리, 코알라 등 ㅡ을 묘사한 부분이 너무 웃겨서 혼자 키득댔다. 호주로 여행가고 싶어졌다. 가서 코알라랑 상어, 바다뱀을 보고 싶다!

올림픽은 지루하다는 데에 동감이다. 지금까지 올림픽이나 다른 스포츠경기를 챙겨본 적이 없다. 마치 드라마 처럼. 딱히 찾아서 보진 않지만 어쩌다 보게 되면 재밌게 보는  것. 경기 중간에 자리를 떠야 할 때도 왠지 아쉽지만 집에 와서 결과를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루키가 정작 묘사한 올림픽을 보면, 스포츠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간의 공격 본능을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극한의 상태까지 몸을 푸쉬한다. 마라톤이 그 절정이다. 잘 만들어진 기계처럼 몸을 만든다. 페이스를 조절하는 몸안의 타이머는 몇 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달릴 때는 정확하게 같은 동작으로 손발을 움직인다. 땀냄새가 나는 가장 아름다운 기계이다. 스스로를 이렇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당분간 달리기에 중독될 듯. (아마도)

최근들어 가장 빨리,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하루키의 글을 좀 더 읽어볼까 한다.


아래는 인상 깊은 구절.


결과는 문제가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의 손을 벗어난 문제니까.
그러나 결과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양을 이루어 영원히 남고, 경우에 따라서는 앞으로의 세월을 크게 좌우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간에 내면의 악령과 함께 살아간다. 악령은 때로 악몽이라는 형태로 삶에 등장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악몽과 조우하고 어떻게든 극복해 나가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고독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나는 작가이기에 고독이 지니는 힘차고 찬란한 가치와 위험한 독성을 잘안다. 진정한 가치를 손에 넣기 위해서 우리는 그 독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체득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긴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그 독은 우리를 습격한다. 교활한 뱀처럼.


우리는 모두, 거의 모두 자신의 약점을 껴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 약점을 없앨 수도, 지울 수도 없다. 약점은 우리 존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곳에 몰래 숨겨 둘 수는 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그런 행위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일은 약점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약점에 발목 잡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디딤돌로 삼아 스스로를 보다 높은 곳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결과적으로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얻을 수 있다. 소설가든 육상 선수든 평범한 직장인이든 원칙은 같다.
물론 나는 승리를 사랑한다. 승리를 평가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기분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승리 이상으로 '깊이'를 사랑하고 평가한다. 때로 인간은 승리하고, 때로 패배를 맛본다. 그리고 그 후에도 우리는 계속 달린다.

2008년 8월 29일 금요일

취향테스트

초롱 언니&그 남지친구 분 홈피에서 발견!
얼마전에 테스트 했을 때 "간결하고 냉정한 인공지능 취향"이 나왔다. 역시 전공은 속일 수 없다.


그런데 블로그에 포스팅하려고 다시 테스트 해본 결과...
이럴수가! "현실적이고 절제된 아저씨 취향"(내용은 아래에)가 나왔다!
이 나이에 아저씨 취향이라니 OTL... 게다가 난 여자라구... OTL...
결과를 믿을 수 없어 몇번이고 테스트를 다시 했다.
그런데  결과는 매번 같게 나왔다. 고작 열흘만에 아저씨가 된거야? 그런거야?? ㅠ

그동안 너무 쩔었었나. 스스로를 '할아버지 같다' 혹은 '아저씨 같다'고 생각한 적 있고 남자는 왠지 아저씨 같은 타입을 더 선호하지만... (헉! 나 왜이러니)) 막상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슬프다. 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현실적이고 절제된 아저씨 취향


당신의 취향엔 쿨하고 냉정한 매력이 있습니다.


당신의 취향은 실용주의, 물질주의, 보수주의로 요약 가능합니다.(문화 예술 취향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보수라는 건 아니죠.) 당신은 "예술이 밥 먹여주니"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실학파'일 수도 있고, "예술보다 밥"이라고 말하는 완고한 보수파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절제된 형태의 표현을 좋아합니다. 슬픔에 흐느껴서도 안되고, 기쁨에 호들갑을 떨어서도 안되며, 사랑에 목소리가 떨려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기존의 통념을 파괴하는, 원칙과 질서를 무시하는 철딱서니 없는 표현에도 거부감을 느낄 겁니다.  



당신의 취향은 바로 이런 분위기입니다.
좋게 말하면 냉엄한 사리분별일테고, 나쁘게 말하면 단순함이라 하겠습니다.


당신에겐 쉽고 간결하며 격식과 모양새를 갖춘 콘텐트가 잘 맞습니다. 그림으로 치자면 사실주의 작품들, 소설로 말하자면 사실주의 문학이 잘 맞습니다. 영화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건조하고 딱딱한, 하지만 현실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진실된 메시지를 담은 종류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문화 예술의 발전에 저해되는 사람으로 치부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당신의 취향 중에는 (극소수이긴 하겠지만) 창작의 자유를 해치는 검열주의자, 엄숙주의자,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 취향의 상당수는 이것저것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기긴 하지만 딱 부러지게 좋아하는 것이 없을 겁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일관된 기준이 없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좋아하는 것
당신은 본론부터 간략히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추상적인 표현도 싫고, 은유적인 표현도 싫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당신 취향에 가장 적합합니다. 가령, 심오하고 추상적인 미술 작품보다는, 아래와 같은 미술 작품이 훨씬 보기 좋다는 것이죠.



하이퍼리얼리즘의 대표작 "John" (Chuck Close)의 제작 과정


저주하는 것
당신은 일단 도를 벗어난, 과격한 것이 싫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 안되는 문학적 예술적 표현도 싫습니다. 쉽게 풀어 얘기를 하면 될 걸 뭐하러 어렵게 꼬아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힘내자.

짜증나고 우울하지만 그래도 힘내자.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언젠가 내가 모르는 모든 것들 알게 될 날이 오겠지.

2008년 8월 10일 일요일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1994년에 개봉된 영화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오스카 쉰들러라는 사람이 너무 이상적으로 표현되고, 쉰들러 리스트는 가짜라고 밝힌 논문도 있다고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감동에는 변화가 없다.

주인공이 미화되어 있지만 멋있는 건 어쩔 수 없다. 화술, 대처술,... 난 왜 이런 게 멋있어 보일까. 실제로 화술이 좋은 사람은 바람둥이 기질이 있지만 (쉰들러도 그랬고) 내가 말을 잘하고 싶어서 더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왜 화술 좋고 대처술 좋은 여성은 영화에서 안보이는 거지? 보고 좀 따라하고 싶은데 말이야.

좋은 자극이 되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목표가 너무 이상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체적인 숫자 하나 없이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은 내 인생 말미에서 변명할 거리를 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너무 관대했다.

또 한가지 나에게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역사의식. 고등학교에서 나름 역사교육을 많이 받았음에도 (5.18 민주항쟁같은) 불구하고, 지금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도 두번 읽었지만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겨우 2차대전 당시 유태인이 6백만명, 전체 11백만명이 죽었다는 건 기억하는데 우리 나라 역사에 대한 건 정말 모르겠다. 지금 대통령이 몇 대 대통령인지도 모르겠다.(지금 보니 17대 군.) 나의 무식이여. 공부한다는 핑계로 역사와 현실에 무관심하다. 정신 좀 차리자.

내가 한국인이라서 한국이 올림픽에서 이기고 한국이 다 잘되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물론 이기면 기분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심판정 얘기까지 들어가며 이기는 건 정말 싫다. 내가 한국 역사를 공부해야하는 이유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뚜렷이 하기 위함이다. 또한 주변나라 사람들이 잘못된 역사를 알고 있으면 그를 바로잡아주기 위함이다. (이게 정말 필요하면서 어려울 것 같다.)

결론은 쓸데없는 짓 줄이고 공부공부~ 그리고 역사공부도!!




오스카 쉰들러 분을 맡았던 니암 리슨.
완전 영웅처럼 나온다. 담배피는 장면도 저리 멋있게 표현되다니;;



쉰들러의 묘비.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왔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