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6일 화요일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시간 관리법을 알아보고자 구입한 책이다. '학습인지기술향상전략'이라는 수업시간에 김미라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다. 또다른 추천도서로는 '세계는 평평하다'가 있었다. 다음에는 이것도 읽을 예정이다.


우선 류비셰프라는 사람에 대해 대표적인 것만 얘기하면, 시간통계방법을 개발한 사람으로서 26세부터 임종전까지 그 방법을 사용하였고, 남에게 그 방법을 강요하거나 상품화하려도 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 시간을 확보하는 데에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가 러시아인이었는지, 곤충학 학자였는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시간통계방법을 남은 평생동안 실천한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류비셰프가 고안한 시간통계방법은 간단하지만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 썼는지 모두 기록하고 어느 부분에 얼만큼 썼는지 매일, 매월, 매년마다 통계를 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앞으로 그가 얼만큼의 일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류비셰프는하루에 순수 연구에만 소요되는 시간을 10시간으로 잡았다. 그리고 10시간을 세 부분(1), 혹은 여섯 부분(0.5)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분 단위까지도 정확하게 계산하였다.
그리고 그는 업무는 여러 부류로 나눴는데 첫 번째 부류 업무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업무, 즉 집필이나 연구 등과 같이 학문에 관련된 업무를 말한다. 예를 들어서 학술서 읽기, 요점정리, 학술 편지 쓰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부류 업무는 학술 보고, 강의 각종 세미나, 문학 작품 독서 등 첫 번째 부류에 포함되지 않는 업무들을 포괄한다.
류비셰프는 첫 번째 부류, 즉 가장 창의적이고 고난이도의 연구가 필요한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들은 계획대로 진행시키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예를 들어 1965년의 어느 여름 날을 보자.

소스노코르스크 시 방문 - 0.5
기본 과학 연구: 도서색인 - 15분, 도브잔스키 저서 읽기 - 1시간 15분
곤충분류학: 견학 - 2시간 30분, 두 개의 그물 설치 - 20분, 곤충 분석 - 1시간 55분
휴식(처음으로 우흐타 마을에서 수영을 함)
이즈베스티야 지 - 20분
의학신문 - 15분
호프만의 소설 <황금단지> - 1시간 30분
안드론에게 편지 - 15분
(pg. 71)


이쯤되면 미련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방법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가? 시간통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그러나 그는 순수 연구활동에 쓰는 시간의 1%정도, 한달에 3시간만 시간통계에 사용하였다. 그렇다고 그가 연구를 적게 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는 1966년에는 총 1906시간을 순수 연구활동으로 소모하였다. 휴일과 명절 없이 매일 5시간 13분 동안 연구만 한 것이다.

그는 시간통계를 통해 집중력 관리를 했던 것 같다. 집중력 최대화 할 수 있도록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을 번갈아 하였다. 이렇게 시간관리를 한 결과는 각 방면에 걸친 방대한 양의 논문과 책, 편지 등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른 이가 보지 못했던 것을 관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과에 비해 성공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는 소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돈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했고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 류비셰프처럼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연구에만 매달렸다. 마치 쉴새없이 돌아가며 소금을 만들어내는 동화 속의 맷돌처럼 말이다. (pg. 184)


이렇게 사는 게 과연 행복한 것일까? 본인이 만족한 다면 이런 삶도 괜찮은 걸까? 물론 나는 학자로서 스스로의 연구에 몰입하고 가치 있는 논문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고 시간통계방법을 흉내내보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성이 앞서는 게 인간적인 삶인가 하는 의심. 그리고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앞선다. 다시말해 류비셰프 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 그가 비록 매일 8시간 이상을 자고 운동과 산책을 한가로이 즐겼으며 한 해 평균 60여 차례의 공연과 전시를 관람했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나의 가치는 성공에 있나보다.

예병일의 경제노트에 행복을 두 가지로 분류해 놓은 글이 있다. 내용이 좋아 스크랩 한다.

<풍경에는 관심없는 관광객으로 살고 있는가>

내려놓아야 행복해진다...
하나라도 더 소유하고, 한 계단이라도 더 올라가는 것이 중요해보이는 이 시대에,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데 심리치료사이자 신부인 드 멜로가 개발한 '훈련'을 보면 조금 감이 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느낌비교 훈련입니다.
1)칭찬받을 때의 느낌, 인정받고 박수갈채를 받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라.
2)해돋이나 저녁노을 같은 자연의 경치를 감상할 때,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감동적인 영화를 볼 때의 기분을 떠올려보라.
1)성공했을 때, 뭔가를 성취했을 때, 최고가 됐을 때, 게임이나 도박, 논쟁에서 이겼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라.
2)일을 진심으로 즐길 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라.
1)번에서 받는 느낌은 세속적인 만족감 이고, 2)번에서 받는 느낌은 영적인 만족감, 자기 완성감에서 비롯된 진정한 행복감 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1)번은 순간적으로 흥분과 만족감을 주기는 하지만, 대개의 경우 공허감과 집착, 불안감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겁니다.
생을 시작하면서 올라탄 인생의 관광버스. 그 버스 안에서 창밖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는커녕, 여행 내내 한 칸이라도 앞자리에 앉겠다고 다투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모습은 없을 겁니다. 생이 끝나면 모두 그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를 내려야하는데.
2009년 새해 벽두에 내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최소한 관광버스 안에서 한칸 더 앞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다투면서 정작 창밖의 멋진 풍경은 감상하지도 못하다 내리는 그런 우는 범하지 않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세속적인 만족감도 싫지 않다. 아니 좋아한다. 대부분 그러하지 않나. 진정한 행복감을 찾을 때에 세속적인 만족감도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결국 세속적 만족감을 좇는 게 아닐까?

나는 '행복을 찾아서'에 나오는 행복이 내가 찾아야 할 행복인 것만 같다. '연금술사'에서 비유한 성공 - 수저에 든 기름 한방울을 지키면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 - 이 내가 추구해야할 성공인 것만 같다.

이러한 관점이 과연 건강한지는 의문이다.

나는 정말 행복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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