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6일 토요일

#4 외딴방 (신경숙)

소설가 신경숙

·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 1984년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1985년 ‘겨울우화’로 [문예중앙] 신인상 공모에

·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 1993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 1996년 <외딴 방>으로 제 11회 만해문학상 수상

· 1997년 ‘그는 언제 오는가’로 제 28회 동인문학상 수상

· 대표작

· <외딴방>문학동네, <풍금이 있던 자리>문학과지성사,

· <바이올렛>문학동네,

· <부석사-2001년 제2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사상사,

· <종소리>문학동네



외딴방은 자전적 소설로서 신경숙 본인의 16세부터 19세까지의 경험과 현재를 넘나들며 얘기되고 있다. 두가지 큰 갈래는 외딴방에 관한 것과 본인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다. 독자로서의 아이러니는 화자의 글쓰기적 고민이 이 소설을 더 문학적으로, 예술의 경지로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효과를 노리고 쓰여진 것이라 생각된다.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다. 시도 쓰고 산문도 써보았다. 나의 생각을 글이라는 도구로 옮긴다는, 나만이 나만의 표현을 쓸 수 있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그런데 커서 보니 나만 그런 표현과 생각을 한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널리 읽혀진다는 생각에 혼자 흐뭇해 하던 시절이다. 이런 생각이 한번 좌절을 겪은건 고등학교 때이다. 존경하는 국어선생님께서 시를 특히 심도있게 가르쳐 주셨는데, 그때 나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는 함축성을 가진 글이다. 단어 하나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작자는 충분히 알고 면밀한 계산후에 그 표현을 써야한다. 내가 모르는 한글 단어들이 얼마나 많던가. 원태연 알레르기를 읽고 이렇게 내키는 대로 쓰면 되겠구나 했던 생각이 부끄러웠다.
두번째로 좀 더 진지하게 좌절하게 된 건 외딴방을 읽고 나서 이다. 시는 아니더라도 산문은 쓸 수 있겠지 생각하던 나였다. 전공 서적이 아닌 누구나 읽기 쉽고,... 솔직히 말해 잘팔리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내 이름 한번 날려볼 수 있을까 싶어서. (나의 완벽증도 하나의 요인이었으리라.) 하지만 외딴방을 읽고, 글쓰기를 신성시 해야겠다. 고 생각한다. 작가는 뼈를 깍는 고민을 반복하며 글을 뱉어낸다. 그런 글을 내가 그냥 쓴다고 하는 건 오만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며 글쓰기에 대한 모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전공 분야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책이지 문학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이렇게 확신을 한게 또 언제였던가. 아직 나를 너무 모르고,... 겸손이 부족하다.

기억에 남는 글귀들..
어디서든지 가던 길을 멈추고서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나의 습성이 때로는 삶을 벗어난 허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같이 든다.

항상 순수하게 살아야 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때에 따라 타협하며 결국 지금의 모습까지 흘러왔다. 타협한 순간부터 이미 난 그때의 날 배신한 게 아닐까. 이제와서 찾는 것도 우습거니와 사실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대로 속물같이 사는게 더 편하다고 확신해 버리는 나다. 한편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는 나다.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일까?


오늘, 나에게 가장 뚜렷한 현재인 오늘

매일 같은 곳에서 바라보았던 하늘이 있다. 그때는 나와 하늘만이 있고,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선 나만이 중요했다. 그 하늘을 보면서 특별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아직도 그 장면만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좀 더 오래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빨간 홍시 같던 태양을 지칠 때까지 바라보고 끊임없이 되뇌고 약속하였다.  그 시절엔 그순간이 뚜렷한 현재 였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나의 열정은 나를 따라오고 있는지. 나는 어느 순간에 살고 있는지. 나의 심장은 뛰고 있는지.

댓글 1개:

  1. 신경숙의 소설을 읽다보면 너무 지쳐요.

    요즘 나오는 김애란 혹은 한유주의 소설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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